주님 만찬 미사 강론…
병자들과 가까이 있으려고 목숨 바친 사제들 기억하는 교황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사제직을 세우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님 만찬 미사’ 중에 특별히 코로나19 판데믹의 시기에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과 이름없는 수많은 본당 주임사제의 성덕을 기억했다. 아울러 하느님의 용서를 체험하고 너그럽게 용서하라고 권고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성체성사, 섬김, 기름부음 받음. 이것이 오늘 우리가 전례 안에서 기념하는 현실입니다. 곧, 주님이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감실이 되어, 주님을 우리와 함께 모시고 다닙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까닭입니다. 빵과 포도주를 통해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은 주님의 신비입니다.
섬김. 이 행위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두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와 나눈 대화(요한 13,6-9 참조)에서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선 주님이 우리를 섬길 수 있도록, 하느님의 종이 우리의 종이 되실 수 있도록 우리를 내어 맡겨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를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종이 되시고, 우리를 씻어 주시고, 우리를 기르시고, 우리를 용서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사제직. 오늘 저는 사제들 가까이에 있고 싶습니다. 저는 최근에 서품을 받은 사제들부터 교황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제들 가까이에 있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제입니다. 주교님들도 모두 사제입니다. (…) 우리는 기름부음 받았습니다. 주님에게서 기름부음 받았습니다. 성찬례를 거행하도록 기름부음 받았습니다. 섬기기 위해 기름부음 받았습니다.
오늘은 ‘성유 축성 미사’가 없었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이전에 성유 축성 미사를 거행할 수 있길 바라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내년으로 연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사제들을 생각하지 않고 이 미사를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제들, 섬기는 사제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며칠 사이 이탈리아에서 60명이 넘는 사제들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의사들, 남녀 간호사들 (…) 곁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들은 이웃을 섬기면서 목숨을 바친 사제들입니다. “옆집의 성인들(i santi della porta accanto)”입니다. 아울러 저는 멀리 있는 사제들도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멀리 있는 한 교도소의 교정사목 담당 사제의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이들과 어떻게 성주간을 보내고 있는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회 소속 사제였습니다. (이 신부님처럼) 많은 사제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멀리 떠났고,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 주교님은 자신이 선교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공동묘지에 가서 선종하신 신부님들의 무덤에 참배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젊은 나이에 현지 풍토병인 페스트로 인해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예방주사도 맞지 않고, 아무 준비도 없이 선교지에 파견됐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름없는 사제들입니다. 농촌 지역의 본당 사제들 중에는 4개, 5개, 7개의 산악 마을을 책임지던 본당 사제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신자들을 찾아다녔고, 신자들을 잘 알았습니다. (…) 한 번은 신부님 한 분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알고있다고 저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정말로요?”라고 되물었죠. 그는 “강아지들 이름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제적 친밀/가까이 있는 사제(la vicinanza sacerdotale)’입니다. 훌륭합니다. 훌륭한 사제들입니다.
저는 오늘 이런 사제들도 마음에 품고 제단에 봉헌합니다. 저는 중상모략을 당한 사제들을 생각합니다. 오늘날 자주 일어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사제들이 길거리에 나갈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끔찍한 행위를 한 사제들에 대한 사건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아,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모욕적인 말 때문에 몇몇 사제들은 사제복장으로 밖에 나갈 수 없다고 저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것에 상관하지 않고 사목을) 계속해 나갑니다. 죄인인 주교들, 교황과 함께 죄 중에 있는 사제들은 용서를 구하는 법을 잊지 말아야 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용서를 청하는 법과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고, 어둠 속에 있으며 (…) 위기를 겪고 있는 사제들을 기억합시다.
형제 사제, 축성자들 여러분. 여러분 모두는 오늘 저와 함께 제대 위에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베드로처럼 고집부리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여러분의) 발을 씻기실 수 있도록 여러분을 내어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종이신 주님은 여러분에게 힘을 주시고, 여러분의 발을 씻어 주시려고 여러분 가까이에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씻겨져야 한다는 이러한 깨달음으로 여러분은 용서하는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용서하십시오! 너그럽고 큰 마음으로 용서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심판 받는 기준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용서한 대로 용서받을 것입니다. 똑같은 기준으로 말입니다. 용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때때로 의심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 그럴 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거기에 모든 이를 위한 용서가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위안 받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담대하게 용서하길 바랍니다.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인해) ‘성사적 용서’를 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적어도 동행하는 그 형제를 위안해 주십시오. 그가 되돌아올 수 있도록 문을 꼭 열어 두십시오.
사제직의 은총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함께 감사드립시다. 사제 여러분에 대해서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만 청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발을 씻기실 수 있도록, 여러분을 내어 맡기길 바랍니다.
출처: 바티칸 뉴스
09 4월 2020, 1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