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레 스콜라 스티카 리바따의 장례미사 강론
죠반니 페레로 신부님(성바오로 수도회)
알바, 성바오로 대성전 - 1987년 3월 27일
창립자께서 말씀하신대로 마드레 스콜라 스티카 리바따는 수도회가 정식 승인을 받을 때까지 제자 수녀들의 양육자요 양성장이셨습니다. 그분에 대해 효심, 존경심,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그분의 가르침, 조언, 지시,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알베리오네 신부님께서 자카르도 신부님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마드레께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마에스트라 라고 불리셨습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삶이 그리스도께 동화하는 끊임없는 성장의 표지였기 때문입니다. 곧, 주님과 점차적으로 친밀해지고 항상 자신에게서 나와 그분께로 건너가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필리 1,11)"를 드리는 창립자의 정신에 따라 경건한 제자의 사명을 위해 투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성소는 오르솔라 리바따의 영혼 안에 일찍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많은 이들의 첫 번째 “예”가 첫영성체의 순간이듯 어린 오르솔라도 첫영성체 때 그러한 "예"를 드렸습니다. 여러 이유로 하느님의 시간이 조금 늦춰지는듯 했으나 마침내 1922 년 7 월 29 일 창립자의 인도로 알바의 바오로 가족에 합류하여 열정을 다해 사도직에 투신하였습니다. 주방, 작업실, 식당, 성당, 도서선교, 벽돌을 굽는 가마, 기차역에 우편 운반까지 필요한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도움을 주기 위해 늘 준비 되어 있었고 쾌활하며 열정적이었습니다.
1923 년 11 월 21 일, 중병에서 회복된 알베리오네 신부는 오르솔라 리바따와 메틸데 제를로또를 선택하여 아직 드러나지 않은 계획을 위해 그들을 따로 살게 하였습니다. 창립자는 그들에게 삶의 기반인 성체조배, 그리고 숨은 희생과 침묵을 새로운 삶의 규칙으로 제시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침묵, 침묵, 침묵을 하십시오."
마드레 스콜라 스티카는 첫 그룹의 책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녀는 창립자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일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은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로, 언제나 천국을 기억하며,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의 망토 속에서, 성 바오로의 정신을 따라" 행하였습니다. 그는 자매들 사이에 열심과 열정의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나자렛 집이 지녔던 천상의 평온함과 초자연적 기쁨"을 닮고자 했습니다. 창립자의 가르침대로 경건한 제자들은 일하고 기도하셨던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관상과 활동의 삶을 조화시키는 임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드레 스콜라 스티카는 자매들에게 큰 희생을 요구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들을 돌보고 격려하며 그들이 "하느님의 사람"이요 "수도회의 아버지"인 창립자의 정신을 해석하고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알베리오네 신부가 자카르도 신부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그녀 또한 "충실한 이들 사이에서 가장 충실했습니다". 모든 것을 항상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따름으로써 그분의 사랑과 영광을 위해 정신, 의지, 마음의 순명으로 행하였습니다.
마드레 스콜라 스티카는 묵상, 기도, 노동, 미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찾고 열정으로 탄원하고 사랑으로 흠숭했던 유일한 분이요, 삶의 중심인 스승예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마드레 스콜라 스티카는 "하느님의 얼굴을 찾으며(시편 26, 8)“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 내리고 그것을 기초 삼아(에페 3, 17)" 걷도록 노력하고, 살아계신 그분과 대화하며 단순한 일상…..을 활기차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스승 예수님과 마음을 맞춰 사는 사람은 자신의 미소로 그분을 비추고 전해주는 생명력을 지닙니다. 곧 파스칼이 말했듯이 그런 사람은 “걸어가는 길”이고 우리를 형제들에게 데려가는 동시에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를 들어 올려주는 사람입니다.
마드레 스콜라스티카는 중요한 책임직을 수행하면서 굴욕과 시련의 시기를 맞았고 그것을 극복하였습니다. ... 굳건한 믿음, 많은 기도, 영웅적인 침묵으로 그는 경건한 제자의 이상을 대담하게 지켜냈습니다.
그는 얼마 동안 아르헨티나에서 지낸 후 로마로 돌아왔고, 그 다음 파리로, 또 알바로, 또 다시 로마로 돌아와 겸손과 온순함, 단순하고 숨은 생활로 다양한 사도직을 수행했습니다. 마리아처럼 기쁨과 고통의 순간에 즉시 “예”를 발했습니다. 수도 생활에는 모든 것이 시련이지만 그 모든 것은 계단입니다. 모든 것이 십자가이지만 그 모든 것은 날개입니다. 그저 사랑하면 충분합니다. 또한 마드레 스콜라스티카는 대속하는 고통… 속에서 그분께 동화되어 작은 희생제물이 되는 그 사랑으로 스승님을 사랑하셨습니다.
천상 모후께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며 도움을 받던 마드레 스콜라스티카는 한생을 감실과 성체의 예수님께 바치시고 굳은 믿음으로 그분을 흠숭하고, 그분과 깊이 대화하며 그분께 온전히 봉헌하셨습니다. 마드레의 가장 큰 휴식은 성당에 머무르는 것이었는데, 성당은 예수님이 당신의 기쁨으로 우리를 채워주시는 달콤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당 밖에서도, 일상의 가장 작은 일에서도 주님을 만날 줄 알았습니다. 마드레 안에 향주덕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혼들을 목말라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고통을 봉헌하였습니다.
그는 1981 년 지상 순례의 마지막 해변인 산프레 공동체에 닻을 내렸습니다. 그는그곳에서 당신 생애의 황금빛 석양, 가을 같은 시기, 하느님께 오르는 그의 마지막 단계였습니다. 땅보다 하늘이 더 넓은 표현한 플랑드르의 유명한 그림과 같이 그의 삶은 이미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을 향했습니다. 그는 시간 속에 살았으나 마치 시간을 초월한 것 같았습니다. 그의 믿음은 날마다 태양 아래 무르익어가는 맛있는 과일처럼 더욱 더 밝게 빛났습니다. 말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침묵, 침묵, 침묵을 하십시오" 라고 했던 창립자의 첫 번째 삶의 규칙을 온전히 살기 위해 침묵의 마지막 계단까지 내려갔습니다.
3월 24 일, 그는 주님 탄생예고 대축일 성찬례에 맑은 정신으로 참여할 수 있었으며 성혈과 함께 성체를 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7시 15 분, 대축일 제1저녁기도 찬미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이 아름다운 영혼을 빛의 왕국으로 데려 가셨습니다.
슬프지만 위로를 받는 우리는 “단순하게 모든 것을 다 주신” 마드레 스콜라스티카가 목적지에 도착하셨음을 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제자 수녀로 선택된 그는 자신을 순결, 사랑, 겸손, 믿음의 꽃으로 변화하도록 노력하셨습니다. 이는 항상 젊음의 활기를 보존하고 자신을 끝까지 내어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라는 바오로인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드레는 이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휴식,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