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톡톡]
2021년 9월 10일(금) 연중 제 23주간 금요일
1984년 12월 15일 소팔가자에서 페레올 주교님께서 보낸 김대건 부제의 아홉 번째 편지입니다.
이 서한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영성은 긴 기다림의 인내입니다.
제가 중국에서 용납되는 것은 사람들이 저를 중국인으로 알기 때문이었고, 잠깐 동안이나마 조국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외국인의 자격으로서였습니다. 아! 인류 대가족의 공동의 아버지께서 천주 성자 예수님이 전 인류에게 전하여 주러
오신 무한한 사랑 안에 모든 자녀를 포용할 날이 언제쯤 오겠습니까!...... 저는 일행과 함께 해가 뜨자마자 급히 서둘러 시장
으로 갔습니다. 읍내 어귀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손에 흰 수건을 들고 허리띠에는 붉은색 조그만 차
주머니를 차고 군중 가운데로 걸어갔습니다.
이것은 조선 연락원들이 우리를 알아보도록 약속한 표였고 그들이 그 표를 보고 우리에게 다가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
다. 그러나 우리가 읍내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여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여러 시간이 헛되게 흘러갔습니다.
우리는 불안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이 우리와 만날 약속을 어긴 것일까?"하는 걱정스러운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마
침내 우리가 말에게 물을 먹이려고 읍내에서 3백 보쯤 떨어진 냇가로 갔는데, 낯선 사람이 우리의 표를 보고 가까이 왔습니
다. 제가 중국말로 말을 걸었더니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선말로 "당신 이름이 무어요?" 하고 물었더니
"나는 한서방이오." 하고 대답하여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요?"하자 "그렇소."하고 말하여 저는 일단 성공했다고 한숨 놓았
습니다.
그가 우리를 자기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 일행은 4명이었는데 거기서 우리를 기다린 지가 한 달이 넘
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에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이 둘러 있어서 오랫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래서 이 가련한 신자들은 슬픔으로 낙담하는 기색이 얼굴에 가득하였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 풍기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외교인들의 호기심을 끌었습니다. 우리는 외교인들이 우리 이야기에 주의를 덜 기울이는 틈을 타서 재빨리 종교에 관한 이
야기를 몇 마디하고는 다시 가축 흥정을 하는 척 하였습니다. "이것 얼마 받겠소?", "80냥이오.", "그건 너무 비싸오. 자,
50냥 줄터이니 당신 가축을 팔고 가시오.", "안 될 말씀이오. 조금이라도 덜 주겠다면 안 팔겠소." 이렇게 하여 우리는 우리
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아홉 번째 편지 소팔가자에서, 1844년 1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