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톡톡]
8/23(월) 성 김대건 신학생의 세 번째 편지(상해에서, 1842년 9월)
1942년 9월 상해에서 마카오의 리브아 신부님께 보낸 서한.
이 서한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영성, "조선 입국을 위한 간절한 기다림."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 ......
마침내 우리는 주산에서 돛을 펴고 출범하여 영국 함선 스무 척과 함께 양자강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출발할 날을 기다리며 머물고 있습니다. 세실 함장의 약속대로 우리는 에리곤호로 조선에 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하여 조선으로 갈 가망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실 함장은 마닐라로 출범하였고,
우리는 지금 여행 보따리를 가기고 양자강 기슭의 어떤 외교인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조선으로 향해 갈 길을 달리 모색하며
출발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부님도 아시겠지만 영국군은 여기서 강 오른편 연안에 있는 몇몇 도시와 상해를 함락시키고 남경으로 진격하였습니다......
영국군이 남경에 도착하여 그 도시 북쪽에 있는 산에 군대들을 상륙시키고 그 도시를 점령하고자 하였습니다.
중국 관리들은 이 광경을 보고 벌벌 떨면서 영국군에게 강화를 요청하러 사자를 보냈습니다. 영국군은 이런 사실을 알고
그들의 제의를 받아들여 강화 조약(난징조약)을 맺고 8월 29일 조인하였습니다.......강화 조약의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은 영국에게 배상금 2천 1백만원을 지불할 것, 중국의 항구 여섯 곳을 개할 할 것, 영국은 북경 황제에게 대사를
파견할 것...... 이 도시의 중국고관은 영국군이 승리한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자녀들을 모아 놓고 집에 불을 질러
모두 함께 타 죽었다고 합니다.
메스트로 신부님도 편지하실 테니까 저는 많이 쓰지 않겠습니다. 스승님께 기도 중에 저를 기억해 주시기를 청하고,
아울러 내내 안녕하기를 빕니다.
공경하올 스승님께, 무익한 아들 김해 김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발행처 : 인천교구 복음화 사목국>